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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본 호주 재해 양상 (산불, 홍수, 폭염)

by 서울 언니 (seoul-Unnie) 202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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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산불
호주 산

호주는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풍부한 대륙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자연재해를 겪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몇 달 전에도 몇 십년만에 온 사이클론 때문에 많은 지역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었습니다. 제 친구들도 정전 피해를 입어 며칠동안 전기를 사용하지 못 했고 많은 집들이 홍수 피해를 입어 복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기후위기의 가속화는 호주의 재해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산불, 홍수, 폭염은 더 이상 특정 계절의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연중 상시적으로 대비해야 할 구조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초반과 비교했을 때, 2020년대 이후의 자연재해는 강도, 범위, 피해 규모 면에서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이며,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재난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산불, 홍수, 폭염이라는 세 가지 주요 자연재해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비교 분석하고,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변화의 구체적인 영향을 상세히 살펴봅니다.

산불 피해의 변화: 과거보다 더 강력해진 불길

호주는 건조한 기후와 광활한 산림 지형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산불 발생 위험이 높은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심화로 인해 이 위험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과거 산불은 주로 여름철, 즉 12월~2월 사이에 발생하였고, 지역적으로도 뉴사우스웨일스(NSW), 빅토리아(VIC) 남부 지역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3년 캔버라 산불은 16만 헥타르를 태우고 4명이 사망했으며, 이 정도 규모도 당시는 "대형 산불"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2019~2020년 ‘블랙 서머(Black Summer)’ 산불은 전례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 산불은 6개월 이상 지속되며 호주 동부 전역을 뒤덮었고, 총 1,860만 헥타르가 불에 탔습니다. 피해 범위는 영국 본토 면적(약 13만㎢)보다도 넓었으며, 33명의 직접 사망자와 3,000여 채 이상의 주택 소실, 30억 마리의 야생동물 피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남겼습니다.

산불이 강력해진 가장 큰 이유는 고온건조한 기후의 장기화입니다. 2019년은 호주 역사상 가장 건조하고 더운 해였고, 평균 기온은 평년 대비 1.52도 높았습니다. 특히 NSW의 경우, 연간 강수량이 평균보다 40% 적은 기록적인 가뭄을 겪었고, 이는 산림 지대를 거대한 마른 땔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러한 기후 조건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수천 헥타르를 태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는 단순히 온도와 강수량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고, 제트기류와 대기 흐름에도 영향을 미쳐 기상 예측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조기 대응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원인이 되며, 기존의 산불 대응 매뉴얼이 통하지 않는 사례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산불은 더 빠르게 퍼지고, 더 오랜 시간 지속되며, 더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슈퍼재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홍수 재해 비교: 국지성 강우에서 대규모 침수로

홍수는 호주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재해 중 하나로, 북부의 열대성 강우부터 남부의 저기압성 호우까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합니다. 과거의 홍수는 계절풍에 의한 국지적 피해가 대부분이었으며, 피해 규모도 비교적 제한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74년 브리즈번 홍수는 약 1만 가구에 피해를 주었고, 당시에는 100년 빈도의 강우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과 2022년의 대홍수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2011년 퀸즐랜드 브리즈번 홍수는 댐 용량을 초과한 폭우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수문 개방이 일어나면서 발생했고, 35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2022년에는 라니냐 현상과 이례적 저기압이 겹쳐 뉴사우스웨일스, 퀸즐랜드 동부 전역이 침수되었습니다. 단 7일 만에 1,000mm 이상의 비가 내렸고, 수십 개의 마을이 고립되며 약 2만 채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바로 대기 중 수증기량 증가입니다. 기후위기가 가속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강우 시 단시간에 폭우가 쏟아지는 ‘기후 폭력성(climate extremity)’을 증가시키고, 플래시 플러딩(Flash Flooding)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단기 홍수를 유발합니다.

더 심각한 점은 도시 인프라의 설계 기준이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현재의 기후조건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 배수 시스템, 저지대 주거지 개발, 콘크리트 위주의 토지 활용 등은 오히려 피해를 확산시키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홍수는 이제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기후와 인프라, 정책의 결합 문제로 접근해야 할 사회적 재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폭염 증가: 무서운 온도 상승과 그 여파

폭염은 호주에서 가장 과소평가되어 온 재해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유발하는 자연재해입니다. 저도 자연재해라고 하여 홍수와 산불 정도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운 온도 때문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9년 빅토리아주 폭염 기간 동안만 374명이 열사병 등으로 사망했으며, 이는 같은 해 산불로 인한 사망자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수치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여름철 40도 이상 기온을 기록하는 도시는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에는 퍼스, 애들레이드, 시드니, 멜버른 등 주요 도시에서 45도를 넘는 폭염이 2주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호주 기상청에 따르면, 폭염 일수는 지난 50년간 평균 2.5배 증가했으며, 특히 내륙 지역은 여름철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폭염은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피해를 동반합니다. 고령자와 환자에게는 직접적인 생명 위협이 되며, 전력 수요 증가로 인한 정전, 농작물 피해, 수자원 고갈, 도시 기능 마비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특히 도시 지역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차량 열기, 낮은 녹지율로 인해 ‘열섬현상(Urban Heat Island)’이 심화되어 체감온도는 실제 기온보다 3~5도 이상 높은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폭염은 다른 자연재해의 전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고온 건조한 날씨는 산불의 주요 원인이 되고, 대기 불안정은 폭풍우와 번개 활동을 증가시켜 간접적 재난을 유발합니다. 이는 폭염이 단독 재해로서뿐 아니라, 다른 재해와 연결된 ‘복합 재난(multihazard)’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합니다.

산불, 홍수, 폭염은 호주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복합 재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단기간에 사회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닌,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앞으로도 더 빈번하게, 더 광범위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 통계에 기반한 예측과 준비가 아닌, 미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후 회복력 기반의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 강화, 도시 인프라의 친환경화, 지역사회 중심의 재난 교육, 개인의 기후 이해력 제고 등이 모두 병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준비가, 앞으로의 가장 큰 피해를 막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