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연방, 변화하는 관계

by 서울 언니 (seoul-Unnie) 2025. 4. 10.
반응형

영국 국기
영국 국기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은 한때 ‘대영 제국의 잔재’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치·외교적 구심력보다는 문화적·상징적 연대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구성원 국가들이 점점 자국 중심 외교 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 영연방은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영국과의 정치적 거리감, 내부 이견, 군주제 존속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면서 ‘해체’ 혹은 ‘재구성’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영연방의 현재와 미래를 외교·정치·역사적으로 분석해 봅니다.

현대 외교 속 영연방의 입지 변화

영연방은 현재 54개국이 가입되어 있으며, 이 중 15개국은 여전히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하고, 실질적인 외교 전략이나 경제 협력에서는 각국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거 영연방은 식민지였던 국가들 간의 정치적 유대를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냉전 시기에는 미국-영국-영연방 국가들 간의 정보 공유 및 외교 연대를 통해 국제정치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했죠.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영연방의 결속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으며, CHOGM(영연방 정상회의)도 명확한 공동 성명을 도출하지 못한 채 상징적 행사의 성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한,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이 EU를 떠나면서 영연방을 대안 외교 경제 블록으로 활용하고자 했으나, 실질적인 경제 통합이나 협상력 확보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는 구성원 국가 간 정치 체제, 외교적 이해관계가 워낙 상이하고, 다자간 협력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영연방은 이제 정치적 연합체라기보다는 역사적 유산에 기반한 느슨한 네트워크에 가깝습니다.

캐나다·호주, 영국과의 정치적 거리감 확대

대표적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와 호주는 오랜 기간 영국 왕실과 정치적 정체성을 공유해 왔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관계에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찰스 3세 즉위 이후 캐나다 여론조사에서는 약 50% 이상의 국민이 “왕실 제도는 구시대적”이라 응답했습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인정하는 구조를 바꾸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캐나다는 현재 각종 공공기관 및 교육 시스템에서 왕실 상징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경우는 더욱 명확합니다. 1999년 국민투표에서 공화국 전환이 부결되긴 했지만, 이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왕실 무용론이 대두되었고, 최근 정부는 다시금 공화제 전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 총선에서 당선된 좌파 연합은 “장기적으로 군주제 폐지를 포함한 헌법 개정안 검토”를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2030년 전후로 다시 한 번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양국 모두 정치, 경제, 안보에서 영국보다 미국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이로 인해 ‘영국 중심의 구도’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고, 영연방 내부 구도도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영연방 내부 갈등과 해체 논의

영연방 내부 갈등의 핵심에는 역사적 상처와 불평등한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리브해 지역 국가들은 오랜 식민 지배와 노예제도의 책임을 영국에 묻고 있으며, 공식적인 사과와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1년, 바베이도스는 공화국 선언과 함께 찰스 3세의 국가 원수 지위를 박탈하며 영연방 내 상징 체계를 공식적으로 거부한 첫 사례가 되었습니다. 바베이도스의 이 같은 조치는 자메이카, 벨리즈, 세인트루시아 등 카리브해 인접국의 독립 논의에도 불을 지폈으며, 이들은 잇따라 공화국 전환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영국의 과거 식민지배와 그 잔재로 인해 영연방 구조가 “영국 중심주의”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특히 청년 세대 사이에서 “이 연합이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가?”라는 회의적 시각이 퍼지고 있습니다. 또한,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영연방 내에서도 정치 발언권이 낮고, 실제 지원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형식적인 협의체에 머물지 말고 실질적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영연방의 해체 논의로도 연결되고 있는 셈입니다.

영연방 관계의 미래: 해체냐, 진화냐?

영연방의 미래는 “해체 vs 재정의”라는 두 흐름 속에서 요동치고 있습니다. 해체론자들은 영연방이 구조적으로 구식이며, 구성원 간의 실질적 연대나 협력도 미비하므로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자메이카 총리는 “우리는 이제 독립국이며, 상징적인 연결조차 필요 없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반면, 진화론자들은 영연방이 과거의 제국 중심 체제를 탈피하고, 기후위기 대응, 개발 협력, 교육 교류 등에서 느슨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연대와 비군사적 협력이 강조되면서, 전통적 외교보다는 실용 중심의 플랫폼으로서 역할 재정의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또한 영국 내부에서도 “영연방을 과거의 권력 상징이 아니라 미래 협력 모델로 바꾸자”는 제안이 정치권 및 왕실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찰스 3세는 즉위 이후 ‘서번트 리더십’을 강조하며, 구성원 국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영연방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의가 성공하려면, 진정한 권한 분산과 경제적 실효성을 동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단지 형식적인 구호에 머물 수 있습니다. 결국 영연방의 미래는 구성원들의 선택과 국제 정치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영연방은 과거 제국의 유산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각국의 정치적 자율성과 정체성 강화 속에서 해체 혹은 진화를 모색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캐나다와 호주 같은 중심국마저 영국과의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고, 카리브 국가들은 자발적인 이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영연방은 ‘형식적 연합체’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대 변화에 맞춘 실질적 협력체로 진화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국의 선택과 공동의 미래 비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역사의 변곡점을 목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