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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zac Day(4/25) - 한국전쟁과 호주군의 기록

by 서울 언니 (seoul-Unnie)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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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zac, Day, Soldier
Anzac, Day, Soldier

얼마 전에 호주에서 Anzac Day 공휴일이었는데 한국 커뮤니티에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뉴질랜드 군들을 잊지 말자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래된 듯 얼마 되지 않은 몇 십년 전 전쟁이지만 분명 많은 UN군들과 다양한 국가로부터 파병, 지원을 받아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에 후손인 우리들이라도 역사를 잘 알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25전쟁은 세계 16개국이 유엔군이라는 이름 아래 참전한 국제적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멀리 떨어진 오세아니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초기부터 전투병력을 파견하며 강력한 연대를 보여주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의 참전 배경, 전투기록, 전술적 기여, 그리고 유엔군 내 ANZAC 병력의 전반적 역할과 평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호주군의 6.25전쟁 전투 기록

6.25전쟁 발발 직후, 호주는 유엔 결의에 따라 빠르게 병력을 파견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1950년 9월, 호주 정부는 제3왕립호주연대(3 RAR, Royal Australian Regiment)를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으며, 이 부대는 곧바로 전투에 투입됩니다. 초반에는 미군 1기병사단 산하로 편성되어 움직였고, 이후 영연방 제27여단 소속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호주군은 1950년 10월부터 평양 북방 지역으로 진격하는 작전에 참여했으며, 특히 북한군과의 싸움에서 지형 활용과 기동력 면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전투는 가평 전투(Battle of Kapyong, 1951)로, 이 전투에서 3 RAR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내며 중요한 전략적 고지를 방어했습니다. 이 전투는 유엔군 전체의 전선 붕괴를 막는 결정적 전투로 평가받으며, 호주군은 이 공로로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습니다. 또한 호주군은 보병뿐 아니라 공군(RAAF)도 활약했습니다. No. 77 전투비행대대는 F-51 머스탱과 F-86 세이버 전투기로 공중 엄호 및 근접 지원작전에 참여하며 육군의 전진을 지원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호주군의 전사자는 340여 명에 달했으며, 이들의 희생은 한국과 호주 간의 외교·군사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엔군 내 ANZAC 병력 분석

유엔군 내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병력은 흔히 ANZAC(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공조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ANZAC은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부터 전통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전통 깊은 병력 연합체로, 한국전쟁에서도 그 위상이 유지되었습니다.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은 대부분 영연방 제27여단 및 이후의 제28영연방보병여단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호주군은 보병 중심, 뉴질랜드군은 주로 해군과 포병 전력을 지원하며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는 정규 육군 병력이 아닌 해군 프리깃함과 포병 부대를 중심으로 참전하였으며, NZ 16야전포병대는 1951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 중공군의 야간 공세를 막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ANZAC 병력은 유엔군 전체 병력 대비 소수였지만, 훈련된 전투력과 영국식 전술 운용능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영국, 캐나다, 인도군과 함께 유엔군 내 영연방 전투 전력의 핵심축을 이루었고, 특히 산악 지형에서의 보병 및 포병 협동작전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호주군 & 뉴질랜드군의 기여

호주와 뉴질랜드 모두 ANZAC의 이름 아래 참전했지만, 실제 전쟁 수행 방식과 기여도 면에서는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호주군은 전쟁 초기부터 보병 전투병력과 공군 전투기를 모두 파견한 적극적 참전국으로, 전투선 최전방에 위치해 수많은 실전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특히 가평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직접적인 지상 전투를 수행했고, 유엔군 작전 전체에 전략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뉴질랜드는 보다 제한적인 병력을 파견했지만, 전술적으로 매우 효율적인 전력을 운영했습니다. 해군 프리깃함인 HMNZS Tutira, Pukaki, Rotoiti, Hawea 등은 미 해군과 함께 해상 봉쇄 및 상륙 지원작전에 참여했으며, 16야전포병대는 고지 전투에서 유엔군의 방어선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포병 운용 능력은 다른 참전국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요약하자면, 호주는 규모와 범위 면에서 더 많은 군사적 기여를 했고, 뉴질랜드는 전문화된 해군 및 포병력 중심의 효율적 전투 지원으로 기여했습니다. 두 국가는 모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귀중한 병력과 자원을 헌신한 주요 참전국임이 분명합니다.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국지전이 아닌 국제전으로 확산되었고,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엔 결의에 따라 실질적인 군사적 기여를 했습니다. 이들의 참전은 단순한 군사 개입을 넘어 국제 연대와 평화 유지의 상징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기여를 기억하고, 호주·뉴질랜드와의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